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불교/타 종교 간의 관계 (문단 편집) == 서론 == >삼명(三明)을 갖춘 바라문으로서 일찍이 한 사람이라도 [[하느님]][* 범천(梵天). 제석천. 우주 만물을 만들었다는 최고 절대신을 말한다.]을 본 자가 있는가? >만일 본 일도 없고 볼 수도 없는 [[하느님]]을 믿고 받든다면, >마치 어떤 사람이 한 여인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의 얼굴을 본 일도 없고 이름도 거처도 모른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요. >---- > - 잡아함 권16 삼명경 >비구들이여,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그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 세상은 무너지는 때가 있다. 세상에서 대부분의 중생들은 광음천에서 태어나게 된다. 마음으로 이루어진 그들은, 희열(喜,기쁨)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깨끗한 존재로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문다." > >2.3 "비구들이여,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그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 세상은 다시 이루어진다. 이루어 지는 세상에 비어 있는 범천의 하늘 궁전이 나타난다. 그때 어떤 중생이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하여 광음천의 무리에서 떨어져서 비어 있는 범천의 하늘 궁전에 태어난다. 그는 거기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깨끗한 존재로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문다." > >2.4 "그는 그곳에서 오랜 세월 홀로 살았기 때문에 싫증과 동요가 생긴다. '다른 중생이 여기에 왔으면!'이라고. 그때 중생들도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해서 광음천의 무리에서 떨어져 범천의 하늘 궁전에 태어나 그 중생의 동료가 되었다. 그들도 역시 거기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깨끗한 존재로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문다." > >2.5 "비구들이여, 그때 첫 번째로 태어난 중생에게 이와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범천이요, 대범천이고, 정복자요, 정복되지 않는 자요, 모든 것을 보는 자, 지배자, 권능을 가진 자, 창시자, 창조자, 으뜸이 된 자, 신분을 부부여하는 자, 주인, 과거와 미래의 것들의 아버지다. 나야말로 이 중생들의 창조자이다. 나에 의해 이 중생들은 창조되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 전에 내게 '다른 중생이 여기에 왔으면!'이라고 는 생각이 일어났고, 그러한 내 마음의 바램 때문에 이 중생들이 여기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라고. > >나중에 그곳에 태어난 중생들에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범천인 이 존자는 대범천이고, 정복자요, 정복되지 않는 자요, 모든 것을 보는 자, 지배자, 권능을 가진 자, 창시자, 창조자, 으뜸이 된 자, 신분을 부부여하는 자, 주인, 과거와 미래의 것들의 아버지다. 범천인 이 존자에 의해 우리는 창조되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 우리는 이분이 여기에 먼저 계신 것을 보았고, 우리는 나중에 태어났기 때문이다.'라고." > >2.6 "비구들이여, 거기서 먼저 태어난 그 중생은 수명이 더 길고, 더 아름답고, 더 큰 위력을 가졌다. 그리고 나중에 태어난 중생들은 수명이 더 짧았고, 더 못 생겼으며, 더 작은 위력을 가졌다. >비구들이여, 그런데 그 중 어떤 중생이 그 무리로부터 죽어서 지금 상태(今生,금생)로 오는 경우가 있다. 지금 상태로 온 자가 집으로부터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다. 집으로부터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자는 노력의 결과로, 정진의 결과로, 실천의 결과로, 불방일의 결과로, 바른 마음의 기울임의 결과로 마음이 삼매를 닦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 하지만 그는 바로 그 전생의 삶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한다." > >그는 이렇게 말한다. >'범천인 그 존자는 대범천이고, 정복자요, 정복되지 않는 자요, 모든 것을 보는 자, 지배자, 권능을 가진 자, 창시자, 창조자, 으뜸이 된 자, 신분을 부부여하는 자, 주인, 과거와 미래의 것들의 아버지다. 범천인 그 존자에 의해 우리는 창조되었다. 그는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존재인 그는 영원히 그렇게 계신다. 그러나 범천인 그 존자에 의해 창조된 우리는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으며, 수명이 짧고 죽기 마련이며, 지금의 상태로 왔다(이곳에 태어났다.)' 라고 > >비구들이여, 그것 때문에, 그것과 관련하여 일부 영속 일부 비영속론자인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일부는 영원하고 일부는 영원하지 않은 자아와 세상을 선언하는 첫 번째 경우이다." >---- > - 디가니까야 1, 범망경 中 >법계(法界)와 그것에 속한 것들이 모두 마음이 지어낸 것들임을 알아야 하리라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 > - 화엄경, 야마천궁 게찬품 불교는 타 종교의 신에게 무척 관대한 편이라고 알려져 있다. 일단 [[기독교]], [[이슬람]] 같은 절대자를 믿는 [[유일신교]]에 비하면, 다른 종교와 공존할 여지가 교리상 더 폭넓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석가모니]]는 그의 가르침에서 당시 [[인도 반도]]의 다양한 종교들과 철학 학파들을 모두 외도라 하며 철학적으로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또한 서구적 관념에서는 절대 신(神) 혹은 인도적 관점에서는 브라흐마 중심의 종교에 대해서도 (위에 나와있는 범망경의 사례와 같이) 그런 종교의 기원이 되는 '존재와 세계가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문들'의 예를 들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불교가 타종교의 교리에 대해 관대한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불교의 가르침의 핵심이 지혜와 자비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이 자비로 타 종교는 물론 모든 중생들에게 자비로운 것이라고 봐야 한다. 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교는 이미 처음부터 그리고 발전하는 과정에서도 철학적으로 탄탄한 바탕을 자생적으로 갖추었다. 태생적으로 [[인도 반도]]의 여러 사유들과 교류했으며, [[대승 불교]]의 경우 중국 철학과도 교류하며 발전했다.[* [[유대교]] 및 [[그리스도교]]가 비옥한 초승달지대의 사유들과 교류하며 발전하고, 또한 [[그리스]] 철학과 교류한 것과 비교하면 꽤 흥미로운 비교가 될 수 있다. 유대교는 지혜서에서 플라톤의 사추덕(현명, 정의, 절제, 용기)을 서술하는 등 그리스 철학과 상당한 교류를 하였으며, 이러한 사유들은 그리스도교 교회로 이어진다. 대승불교의 경우도 중국의 여러 사상들과 경쟁 및 교류하며 발전했는데, 심지어 노장사상의 계승자는 도교가 아니라 [[선종(불교)|선종]]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 그리스도교를 빼놓고 서양철학사의 서술이 불가능하듯, 대승 불교를 빼놓고 동아시아 철학사를 서술하는 것도 불가능한 지경이다. 고등학교 한국사에서 원효, 지눌 등의 사상을 교육하는 것도 이런 이유.][* 오히려 불교가 중국 사상을 관념론적으로 한 단계 높혀놓았다. 도교는 물론이고 현실지향적이던 유교의 형이상학화([[성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철학적 이미지 때문에 불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절대자를 믿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들에 너무나 익숙한 서양인들은 불교를 종교가 아닌 하나의 철학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교가 철학적인 토대를 탄탄한 배경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종교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교]] 역시 플라톤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받아들여 나름의 논리를 갖추었지만 종교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당장 신약의 [[복음서]]들만 하더라도(특히 [[요한 복음서]]) 그리스 철학적 색채가 강한 편이고, 심지어 필리피서에서는 형상(Forma)이라는 상당히 플라톤적인 용어로 예수의 신성을 설명한다. 물론 고대에는 철학과 종교가 명확히 구분되지는 않았기에 철학과 종교 둘 다에 해당할 수는 있지만, 종교라는 특성이 부정되기는 어렵다.] 그런 이유로 현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다른 종교에 비해서 상당히 유화적인 게 특징이다. 그러나 평신도들이 하는 행태를 보면 이들이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인지 아니면 [[석가모니]] 중심의 [[다신교]]를 믿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의심되는 면이 없지는 않다. 냉정히 말해 평신도들의 기복적인 신앙 모습은,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은 불자가 아니면 [[다신교]]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이럴 때는 이 [[부처]]/[[보살]]에게 빌고, 저럴 때는 저 부처/보살에게 빌고. 다만 이를 크게 탓하기도 뭐한 것이, 불교의 기본은 자력으로 스스로를 구제하는 자력 구원이 중심이긴 하지만 초기부터 이미 부처/보살의 가피력으로 구원받는 타력 구원관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초기경전인 [[아함경]] 중 증일아함경에도 염불수행에 대해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5676|나온다]].] 또한 부처에게 개인적인 복을 빌다가 불경을 읽고 공부하면서 제대로 된 교리를 알게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자비를 모토로 삼는 종교라고는 하나, 역사적으로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타 종교에게 무척 관대한 편이라곤 하지만 실은 본지수적. 즉, '부처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다른 종교의 창시자나 성인으로 환생하거나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여 불교 외의 모든 종교를 불교의 '''열화상태, 혹은 하위호환'''으로 보기 때문이다. 지금의 [[힌두교]]를 보면 알겠지만 [[다신교]]라고 타 종교나 외국 선진 문물에 융화적일 줄 생각하면 경솔하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타문화와의 적응은 굉장한 수준. 이런 면은 현대 문명과 실시간으로 치고 박으면서 가장 잘 적응한 모습을 보여준 [[그리스도교]]를 능가할 정도. 메이저 종교 중 폭력으로 성장하는 사례가 적은, 몇 되지 않는 경우 중의 하나다. 물론 역사적으로 불교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폭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도 반도]]의 [[마우리아 왕조]]와 [[쿠샨 왕조]] 같은 경우엔,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주변국들은 정벌하고 먼 나라에서는 고승들을 파견해 전도하는 방법을 썼다. 한반도의 경우, [[고려]] 시대 [[무신정권]] 시절 [[교종]] 계열 종파 [[승려]]들이 무신 정권에 대항해 난을 일으키기도 했고, [[조선]]이 건국된 후 일부 고위 [[승려]]들이 하급 승려들을 모아서 [[조선]] 정부를 타도하고 불교국가의 부흥을 꾀하고자 당취(黨聚)라는 조직을 만들어, 계율을 어겨 타락한 [[승려]]를 응징함과 동시에, 주변 절들과 마을에 약탈과 방화, 살인을 벌이기도 했다(여기에서는 [[땡초]]를 참고)[* 여기서 당취는 땡추중, 즉 [[땡중]]의 어원이 되는 단어다. 일설에 따르면 이 당취는 [[임진왜란]]의 [[승병]]의 중심이 되었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발발 당시 조정에서 불교의 대우를 개선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어 거병케 했고, 전쟁이 끝나고 어느 정도 개선이 이루어져 많은 당취들이 양지로 나오게 되었지만,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여전히 [[승려]]들을 무시했으며 큰 개선은 없었다. [[금강산]] 당취의 잔재세력인 운부(雲浮)는 조정의 태도에 불만을 품고 [[장길산]]과 손을 잡아 1696년(숙종 22) 봉기하여 거사를 도모하려 했다. 그러나 일면에서는 국초보다 불교에 대한 실질적 상황이 좋아졌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다시 지어진 '[[법주사]] 팔상전'을 보면 새롭게 힘을 얻게 된 부농층과 상인계층이 공사에 크게 힘을 실어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실 사대부들 중에서도 남들 앞에서는 불교 엄청 까대면서도 정작 본인 죽고 난 뒤에는 49재를 반드시 올리도록 지시한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일단 왕실부터가 불교 신도들이 많았으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삼국시대 이래로 현대 한국의 기독교, 천주교인들도 49재를 지내는 걸 보면 알 수 있듯 불교의 중요 사상과 문화는 어떤 정치적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것과는 상관 없이 민간인의 입장에서는 토착화된 종교로 받아 들여지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센코쿠 시대]]엔 말이 승병이지 무사들이 승려인 척했던 게 태반인 [[소헤이]]처럼 전쟁의 도구로 쓰였다. 그리고 [[도쿠가와 막부]] 시기에 불교 측에서 "부처극락 [[예수|야소]]지옥"을 외치며 일본 내 [[가톨릭]] 신자들을 박해한 기록도 있고(...) 한편 [[동남아]] [[상좌부 불교]]에서는 [[극단주의]]가 만연해지고 있는 실상이다. [[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21152|참고]] [[동아시아]] 불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처음 불교가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도입될 당시 '''[[부처님]]=신'''이라는 관념하에 도입되었다는 것이다. 토속신앙에서 신과 부처를 혼용/동일시하거나, [[삼국유사]]의 불교 도입 당시 [[신라]] 귀족들이나 [[일본]] 사서에서 모노노베 씨의 불보살들을 외국의 신으로 부르고, 불교 도입에 찬성한 소가 씨 역시 외국의 신이라는 주장 자체에는 반발하지 않는 모습이 보였다. 심지어는 조선에 [[가톨릭|서학]]이 들어왔을 때, 서학을 불교의 한 분파로 여기기도 했다. 다만 이는 동아시아에서 유달리 두드려져서 그렇지, 동남아권 남방 불교나 인도 본토에서도 어느 정도 나타난 현상인 것은 사실이다. [[미얀마]] 같은 경우에도 토속신앙인 낫(정령)이 불교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인도 본토에서도 인도의 토속신앙의 신들을 부처/보살, 명왕, 신중, [[천인]] 등의 표현을 붙여서 흡수하기도 했다. 지모신 숭배가 모태가 된 [[지장보살]]이나 바라문교의 천신이었던 [[제석천]], 태양신 신앙과 관련있으며 특히 [[밀교(불교)|밀교]]에서 중시하는 [[대일여래]] 등이 대표적인 경우. 주의할 점이라면 이 항목의 서술만 믿고 '''불교는 위선적인 불교'''라던가 '''종교 화합은 불가능하다'''라는 생각을 가지는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점. 확실히 타 종교와 모순적인 점이 있거나 이로 인한 갈등이 있다곤 해도 종교의 벽을 허물고 갈등없이 지내는 종교인들은 많이 있다. 당장 법정 스님도 다양한 종교인들과 교류를 가졌으며, 개종을 고려하는 사람에게 어느 종교든 한길로 이어져 있으니 무리해서 개종하려 들지 말라며 타종교를 인정하셨던 분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불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가령 탈레반이 [[바미안 석불]]을 내렸을 당시 무슬림들 대다수가 탈레반에 사이비라며 극렬하게 반대하였고, 일부는 불교 문화권의 국가들이나 신자들에게 사죄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나마 온건한 사람마저 '파괴는 너무 공격적이고 극단적인 수단 아니냐', '올바른 무슬림의 자세가 아니다'라며 비판했을 정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